
2026년 7월 기준. CIA 본부 안뜰의 구리 조형물 ‘크립토스(Kryptos)’에는 네 개의 암호문이 새겨져 있다. 앞의 세 개는 풀렸지만, 마지막 K4는 97글자라는 짧은 길이에도 35년 넘게 암호 해독가들을 막아섰다.
2025년에는 K4의 평문 내용이 스미스소니언 기록물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이를 만들어 낸 암호화 규칙과 키는 공개적으로 재현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핵심 질문은 “문장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그 문장을 어떤 규칙으로 되살릴 수 있는가?”다.
1. 크립토스 K4란?
크립토스는 조각가 짐 샌본(Jim Sanborn)이 1990년 CIA 본부에 설치한 암호 조형물이다. 암호문은 K1부터 K4까지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 K1·K2: 비제네르 계열 치환 방식으로 해독됐다.
- K3: 글자의 위치를 바꾸는 전치 방식이 핵심이었다.
- K4: 97글자이며, 공개 검증 가능한 해독법은 아직 없다.
2025년 9월, 작가가 스미스소니언에 기증한 자료 속 메모 조각에서 K4 평문이 발견됐다. 그러나 샌본은 “발견한 것과 해독한 것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K4의 평문과 원래 코딩 체계가 포함된 아카이브가 경매에서 96만 2,500달러에 낙찰됐다.
즉 K4는 이제 내용은 확인됐지만, 방법은 검증되지 않은 암호다.
2. K4에서 확정된 단서
작가가 직접 공개한 평문 단서는 다음과 같다.
| 단서 | 의미 |
|---|---|
EASTNORTHEAST | 동북동 방향 |
BERLINCLOCK | 베를린의 시계 |
| 1986년 이집트 여행 | K4 구성과 관련된 사건 |
|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 K4 구성과 관련된 사건 |
여기서 중요한 최신 정정이 있다. BERLINCLOCK은 오랫동안 다른 베를린 시계와 연결돼 추측됐지만, 샌본은 2025년에 알렉산더플라츠의 세계시계(World Clock)를 뜻한다고 밝혔다.

시각자료: 공개 단서인 베를린 세계시계, 동북동 방향, 이집트·베를린 장벽의 시간적 연결을 한 화면에 정리한 개념도. 실제 장소의 좌표나 해독 규칙 자체를 증명하는 자료는 아니다.
공개 암호문과 알려진 평문이 겹치는 13글자는 다음과 같다.
암호문 : FLRVQQPRNGKSS
평문 : EASTNORTHEAST
일부 위치의 평문을 아는 이런 단서를 암호학에서는 크립(known-plaintext crib)이라고 한다. K4 분석은 이 13글자에서 출발해야 한다.
3. 분석 1 — 단순 비제네르만으로는 부족하다
표준 알파벳에서 A=0, B=1, … Z=25로 놓고 ‘암호문 − 평문’을 계산하면 다음의 차이가 나온다.
암호문 : F L R V Q Q P R N G K S S
평문 : E A S T N O R T H E A S T
차이 : B L Z C D C Y Y G C K A Z
표준 비제네르 암호라면 마지막 줄은 키 스트림 후보가 된다. 하지만 BLZCDCYYGCKAZ에는 짧은 반복이나 읽을 수 있는 키워드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만으로 비제네르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K1·K2에도 일반 A–Z가 아닌 혼합 알파벳이 쓰였다. 다만 K4에는 다음 중 적어도 하나가 추가됐을 가능성이 높다.
- 표준 알파벳이 아닌 별도 문자표를 사용했다.
- 치환 전에 글자의 위치를 바꾸는 전치 단계를 넣었다.
- 구리판의 행·열 또는 반대편 문자표의 실제 배치가 키 자료다.
K3에서 전치가 쓰였고 K1·K2에서 비제네르 계열이 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K4는 고전 암호 하나가 아니라 치환 + 전치 + 물리적 배치를 겹친 다단계 구조라는 해석이 가장 자연스럽다.
4. 검증 실험 — 공개 크립을 실제로 대입해 보면
공개된 13글자 크립만으로도 몇 가지 가설은 바로 걸러낼 수 있다. 아래 검증은 평문 EASTNORTHEAST와 대응 암호문 FLRVQQPRNGKSS를 같은 순서로 놓고 계산한 결과다.
가설 A: 단순 시저 암호인가?
시저 암호라면 모든 글자에 같은 이동값이 적용돼야 한다. 그런데 첫 글자 F → E는 −1 이동인 반면, 둘째 글자 L → A는 −11 이동이다. 이동값이 즉시 달라지므로 단순 시저 암호 가설은 반증된다.
가설 B: 단일 치환 암호인가?
단일 치환이라면 같은 암호문자는 항상 같은 평문자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암호문에서 연속한 Q Q는 알려진 평문에서 N O에 대응한다. 같은 Q가 두 다른 문자로 바뀌므로, 현재 문자 순서를 그대로 쓴 단일 치환 가설도 성립하지 않는다.
가설 C: 짧은 반복키 비제네르인가?
표준 알파벳 차이로 얻은 키 스트림 후보는 BLZCDCYYGCKAZ다. 반복키 길이가 1~6이라면 같은 간격의 값이 반복돼야 한다. 하지만 첫 글자 B는 2칸 뒤 Z, 3칸 뒤 C, 4칸 뒤 D, 5칸 뒤 C, 6칸 뒤 Y와 모두 다르다. 따라서 표준 알파벳·현재 배열·키 길이 1~6이라는 조건의 반복키 비제네르는 배제된다.
| 검증 대상 | 대입 결과 | 판정 |
|---|---|---|
| 단순 시저 | F→E와 L→A의 이동값이 다름 | 반증 |
| 단일 치환 | Q→N, Q→O가 동시에 발생 | 반증 |
| 반복키 1~6 | 동일 간격 키값이 반복되지 않음 | 반증 |
| 혼합 알파벳·전치 결합 | 공개 크립과 기존 K1~K3 방식 모두를 설명할 여지 | 검증 보류 |
이 결과가 ‘혼합 알파벳과 전치 결합’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장 단순한 세 방법을 실제 공개 자료에 대입했을 때 모두 탈락한다는 점에서, 다음 검증은 조형물의 행·열 배치와 혼합 알파벳을 포함한 다단계 모델에 집중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5. 분석 2 — ‘베를린’은 키워드가 아니라 좌표일 수 있다
BERLINCLOCK과 EASTNORTHEAST를 단순한 암호 키로 읽으면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두 표현은 모두 장소와 방향을 가리킨다.
가설: K4의 평문은 답 그 자체가 아니라, 다음 단계의 위치·방향·전달 방식을 지시하는 문장이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정황은 세 가지다.
- 샌본은 암호들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관련 있다고 설명했다.
- K2의 평문에는 ‘어딘가에 묻혀 있다’는 문장이 있고, 작가는 후속 K5가 K2와 주제적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 세계시계와 동북동은 “이 단어를 키로 쓰라”기보다 “어디를 어떤 방향으로 보라”는 지시문 문법에 가깝다.
다만 이것은 아직 가설이다. 방향이 실제 베를린의 좌표를 뜻하는지, CIA 안뜰의 조형물 위에서 읽을 방향을 뜻하는지, 문자표 재배열 규칙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6. 그렇다면 어떻게 해독해야 할까?
무작정 97글자를 AI나 해독기에 넣는 방식은 성공 가능성이 낮다. 암호문이 짧고 작가가 만든 고유 규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재현 가능한 분석은 아래 순서가 맞다.

해독 흐름: ① 정확한 전사 → ② 공개 크립의 위치 고정 → ③ 행·열·방향 전치 후보 시험 → ④ 혼합 알파벳·키 스트림 대입 → ⑤ 알려지지 않은 구간까지 같은 규칙으로 재현되는지 검증. 임의 보정이 필요하면 그 가설은 폐기한다.
5-1. 원문과 위치를 고정한다
- 조형물의 정확한 문자 전사본을 기준으로 쓴다.
EASTNORTHEAST와BERLINCLOCK의 위치를 1부터 세는 방식과 0부터 세는 방식 모두 적는다.- 조형물의 줄·열·반대편 문자표 위치를 데이터로 보존한다.
인덱스가 한 칸만 어긋나도 이후의 모든 가설이 무너진다.
5-2. 전치를 먼저 의심한다
- 일정 폭의 격자에 넣은 뒤 행과 열을 바꾸기
- 나선형·대각선·방향 전환으로 읽기
- 구리판의 실제 행과 열, 반대쪽 문자표의 위치와 대응시키기
좋은 전치 가설이라면 공개 크립 13글자를 맞춘 뒤에도 나머지 글자에서 자연스러운 키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5-3. 혼합 알파벳 치환을 검증한다
전치 후보가 생기면 표준 A–Z 대신 KRYPTOS처럼 중복을 제거해 만든 혼합 알파벳과 조형물의 문자표를 적용해 본다. 이때 검증 기준은 단순하다.
- 알려진 평문 단서를 예외 없이 재현하는가?
- 임의의 글자별 보정 없이 97글자 전체에 같은 규칙이 적용되는가?
- 키·표·전치 순서가 조형물 또는 공개 단서에서 설명되는가?
셋 중 하나라도 빠지면 ‘그럴듯한 문장’일 뿐, 해독은 아니다.
7. 현재 결론
- 확정: K4는 97글자이며,
EASTNORTHEAST와BERLINCLOCK은 작가가 공개한 평문 단서다. - 확정: K4의 평문은 2025년 기록물에서 발견됐지만, 암호화 방법은 공개적으로 재현되지 않았다.
- 유력: K4는 단순 치환 하나가 아니라 조형물의 배열·혼합 알파벳·전치가 결합된 다단계 구조일 가능성이 있다.
- 미확정: 베를린 세계시계와 동북동이 실제 장소의 지시인지, 해독 절차의 지시인지, K5로 가는 열쇠인지는 알 수 없다.
K4는 정답 문장을 맞히는 퀴즈가 아니다. 누구나 같은 규칙으로 97글자 전체를 되살릴 수 있는가를 묻는 암호다. 평문이 발견된 뒤에도 해독이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줄 결론

평문은 발견됐지만, 누구나 재현할 수 있는 해독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출처·업데이트
- Scientific American — 2025년 공개 단서와 K1~K3 방식
- Smithsonian — 스미스소니언 기록물에서의 K4 평문 발견
- AP — ‘발견’과 ‘해독’의 구분
- RR Auction — K4 코딩 체계와 아카이브 낙찰
이 글은 2026년 7월 기준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K4 평문 전문은 공개하지 않으며, 위의 해독 가설은 검증 전 분석으로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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